일단 저지르는 삶


어렸을 적 정월대보름은 내게 무척이나 귀찮은 하루 중에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침잠이 많아서 한참 단잠을 자고 있는 나를, 아빠 엄마가 집요하게 깨워서는, 부럼을 깨야 한다면서,
신문지를 커다랗게 깔아놓고는, 잣, 생땅콩, 생밤, 호두 순으로 깨물어 던지며 "내 더위 사가라"를 외치라고 하셨다.

그러면 잠결에 땅콩까지는 어찌어찌 깨물어도, 생밤부터는 잘 깨물어지지도 않고, 결국 호두는 무언가로 내리쳐서 겨우 까는것까지는 해도, 그...."내 더위 사가라"는 문장 하나 외치는 것이 또 어찌나 쑥쓰럽던지..

그러고 아침에 학교에 가면, 먼저 본 친구에게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치면 뭔가 이긴기분이, 친구에게 듣게 되면, 뭔가 분한기분도 들어, 아침부터 학교가 왁짜지껄 해졌었다. 또, 친구들이 삶은 밤이나 호두를 가져와서 서로 나눠먹기도 하고, 주머니에서 주먹에 호두를 쥐고 돌리기도 했던,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일상이 그리워진건 바로 몇년전인거 같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니까,자연스레 그때 추억들이 생각나서겠지...
그림이라도 갖춰보자.

어릴때도,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물들과 오곡밥도 준비해보고, 부럼도 준비해 본다. (지난해, 직접 한답시고, 나물들을 종류별로 샀다가, 쫄딱 망했던 기억을 되새기며...역시나 불량한 나 답게...나물은 ssg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 ssg 나물 6종류를 만오천원에 샀는데, 내가 한거 보다, 훨씬 맛있다. ㅡㅡ)



아이들에게, 우리 부모님이 내게 하셨듯이, "내 더위 사가라"를 외치게 한다.
역시나 우리 아이들도 부끄러워 하지만, 재밌어 하기도 하는거 같다.
내심 뿌듯하다...
뭔가 완벽하진 않지만, 이렇게 하면 옛 전통을 계승시키는 것 같은, 나만의 커다란 의미도 부여해 본다.

이렇게, 나이가 드니까...애틋해지는것이 하나 둘 늘어난다.


'불량하게 하루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 초등학교 입학시키기  (0) 2017.02.23
일요일 보내기  (0) 2017.02.19
잘했다 토닥토닥  (0) 2017.02.03
개학..  (0) 2017.02.02
내게 명절이란  (0) 2017.01.29